정부의 설익은 '전환금융'…고탄소 배출기업들 '대략난감'

경제 / 김혜지 기자 / 2026-03-03 08:05:02
(출처=모션엘리먼츠)

정부가 지난 25일 790조원 규모의 '기후금융' 확대방안을 발표하며 '전환금융' 추진을 공식화했지만, 정작 전환금융의 구체적 규모와 세부 집행계획을 제시하지 않아 산업계 혼란이 커지고 있다.

3일 금융위원회 산업금융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790조 기후금융 안에 전환금융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환금융 규모를 묻는 질문에는 "전환금융에 얼마를 투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전환금융은 철강과 시멘트, 석유화학 등 주로 고탄소 업종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자금을 말한다. 금융위원회는 고탄소 산업·기업이 저탄소·친환경 구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국형 전환금융'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부는 '한국형 전환금융'의 규모를 설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전환금융 상품을 마련해 기업에 공급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실제 집행 규모는 시장 수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사전적으로 얼마라고 발표하는 것은 성격상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정부가 일정 규모를 미리 정해 집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금융상품을 설계해 공급하고 시장 수요에 따라 집행액이 결정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790조원이라는 숫자의 산출 근거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전환금융 확대가 반영된 것이냐는 질문에, 금융위 관계자는 "기존 420조원은 2024~2030년에 투입할 기후금융에 대한 계획이었고, 이번 790조원은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상향 조정된 것에 맞춰 2031~2035년 구간이 추가되면서 총 목표 규모가 확대된 것"이라고 했다.

이는 790조원이 기존 420조원을 단번에 증액한 것이 아니라, 2024~2035년까지의 누적 공급 목표로 재설정된 결과라는 의미다. 즉 2031~2035년 5년치 목표 약 370조원이 새로 더해진 구조이며, 전환금융 확대가 총액 증가의 직접적인 산출 근거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 전환금융에 특별히 중점을 두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녹색금융과 전환금융 모두 제도 도입 초기단계이며, 어느 한쪽에 초점을 맞춘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산업별 배분이나 연차별 목표가 정해져 있느냐는 질문에도 "시장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공급할 계획"이라는 원론적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전환금융이 어느 산업에 얼마나 투입되는지, 어떤 조건으로 집행되는지는 현재로선 확정된 바가 없는 셈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총액 제시만으로 정책 실효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 한 전문가는 "기존 420조원 기후금융 발표 당시에도 어떻게 조달하고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가 명확하지 않았다"면서 "세부 산업·섹터별 전환 기술과 필요한 자금 규모가 공개돼야 시장이 가늠할 수 있는데, 현재 발표에는 그런 정보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전환금융에 대한 용처를 산업·섹터별 전환 기술과 필요한 자금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느 산업에 얼마가 필요하고, 언제까지 어떤 기술로 전환할지 비교적 명확하게 공개돼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도 전환금융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기업들이 장기 전환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세부정보가 없으면 시장이 예측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다배출 업종 기업들은 전환금융이 실제 투자 결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소환원제철이나 저탄소 공정 전환은 수조원 단위의 장기 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자금 규모와 조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일정을 확정하기 쉽지 않다.

정부는 전환금융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환금융의 규모·조건·산업별 배분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총액만 제시되면서 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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