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물가 관리는 공급망 관리가 좌우해
기후변화로 농작물 재배지가 북상하고 작물의 생산량이 줄면서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농작물 가격인상이 오롯이 기후변화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에 본지는 기후위기가 밥상물가와 식량안보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데이터분석과 현장취재를 통해 사실여부를 검증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팩트체킹 취재보도 지원사업 기금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기후변화, 밥상물가를 흔든다?] <4편> '초콜릿·커피' 생산량 늘어도 가격 내려가지 않는 이유'에서 이어집니다.
기후위기가 밥상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종국에서 식량안보를 위협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본지가 카카오와 커피, 배추 등 몇 가지 작물에 대한 연도별 생산량과 연도별 가격 추이 등을 분석해본 결과, 작물의 생산량과 가격은 밀접하게 연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생산량이 회복됐는데도 가격이 인하되지 않는 것은 또다른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지의 작황 상황보다 시장의 유통구조가 가격을 결정하고 있었다. 기후변화는 농산물 가격을 상승시키기 위한 재료로 쓰였다.
최근 수년에 걸쳐 밀가루·설탕 등에 대한 가격담합을 했다가 검찰에 무더기로 걸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찰이 추산한 담합 규모는 10조원대에 이른다. 이들은 기후변화와 전쟁, 국제 곡물가 인상 등을 빌미로 반복적으로 가격인상을 도모했던 것이다. 한 번 오른 가격은 국제 곡물가가 하락하거나 생산량이 늘어난 뒤에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짊어졌다.
이와 관련해 남재철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특임 교수는 식량안보 위기를 기후변화 하나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이상기후가 농업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식량안보 문제는 생산량 감소보다 수입 구조와 비축 정책, 유통과 가격 결정 과정에서 더 크게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 식량위기는 생산량보다 공급망에서 초래
지난 2022년 국제 밀 가격은 1년 사이 약 40~50% 급등했다. 세계 주요 밀 수출국 가운데 하나인 우크라이나에서 가뭄으로 생산량이 30% 넘게 급감한 데다, 러시아 침공으로 전쟁까지 휘말리면서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생산량이 줄고 수출길인 흑해 항로까지 막히자, 국제 밀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던 것이다.
밀을 99%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국제 밀 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다. 국제 밀 가격이 오르면서 2022년 우리나라 밀가루 가격은 20~30% 인상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우크라이나 밀 수입 비중은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수입 밀의 40%가 미국과 호주에서 들여오고 있고, 캐나다에서 10% 정도 수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가루 가격은 뛰었다.
지난 2023년에는 쌀 국제가격이 요동치는 일이 있었다. 그해 7월, 전세계 쌀 수출량의 40%를 차지하는 인도가 자국내 쌀값 안정을 위해 쌀 수출을 전격 금지시켰다. 인도 정부의 이같은 조치 1주일만에 방콕 살 거래가는 1톤당 607.50달러로 62.50달러나 치솟았다. 10년 만에 최고가였다. 인도 쌀에 의존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폭등하는 쌀값에 식량난을 겪어야 했다.
2010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국제 밀 시장에서 벌어졌다. 전세계 밀 수출 1위 국가인 러시아는 당시 지독한 가뭄으로 밀 작황이 나빠지자, 밀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러시아의 이 조치로 국제 밀 가격은 약 60% 폭등했다. 이 여파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은 돈을 주고도 빵을 구하지 못해 폭동이 일어났고, 결국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다.
더 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주요 곡물 수출국들은 연쇄적으로 수출을 제한하면서 곡물의 국제가격을 급등시켰다. 이로 인해 전세계 약 1억명이 빈곤 상태에 빠졌을 것으로 세계은행은 추산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곡물 생산량은 감소하지 않았다.
이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식량위기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생산량 감소가 아니라 공급망 불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 가격은 폭등했다. 공급망 차질의 원인이 기후변화이든, 전쟁이든, 협정파기이든 수출금지 조치에서 기인하는 것이든 간에. 국제 곡물가 인상은 빈곤국들의 식량위기로 직결된다.
베트남 달랏에서 커피를 수출하고 있는 리얼빈커피의 로안(Loan) 대표는 "생산량 감소보다 곡물의 수출길이 막히거나 지연될 때 가격 변동성이 더 커진다"면서 "가격 불안은 생산보다 유통 단계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생산량 변동에도 식량안보 확보하려면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 등 기후변화로 곡물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생산량 감소가 식량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식량위기는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긴장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곡물 자급률이 20% 안팎에 불과하다. 특히 밀은 자급률이 1% 미만이다.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수입처 다변화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공급량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특정지역에서 기후변화나 전쟁이 발생하더라도 심각한 공급부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공급량에 대한 수급조절, 시장가격 관리 등을 좀더 정교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담합 등을 통해 부당이익을 취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장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일본 치바대학교에서 농업과 식량 문제를 연구하는 타이가 박사는 "식량안보를 생산량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생산량에 변동이 생겨도 비축과 수급 조정 등을 통해 공급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필요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타이가 박사는 말했다.
타이가 박사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쌀 자급률이 높게 유지될 수 있도록 비축미 제도와 수급 조절을 해왔다. 최근에는 이상기후로 쌀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쌀값이 일시적으로 폭등하긴 했지만 식량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남재철 교수도 "식량안보의 핵심은 기후변화 그 자체보다 기후변화로 생산량이 감소했을 때 발생하는 식량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짚었다. 이어 남 교수는 "기후변화로 생산여건이 흔들릴 수 있다"면서 "하지만 공급망 관리를 통해 비축과 수급조절 그리고 가격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가격불안과 공급위기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식량 생산량을 감소시키는 변수인 것은 맞지만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변수라고 보기 힘들다. 식량안보가 무너진 대부분의 국가들은 생산 이후의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러시아의 밀 수출 중단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을 혼란에 빠뜨렸고, 아프리카 뿔지역의 대규모 기아는 오랜 가뭄으로 인한 내전과 국제원조 중단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는 이미 수입처가 다변화돼 있고 곡물에 대한 비축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불합리한 유통구조가 늘 가격을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배추와 사과 등 주요 작물 생산지의 평균기온은 지난 20년간 2℃가량 상승했을 정도로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 시대에 '식량안보'를 강화하려면 유통구조 합리화와 시장감시 기능 고도화를 통해 생산량 변동에 따른 가격 파동을 최소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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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지 기자 gpwl0218@newstree.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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