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온실가스 규제의 근간이 되는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을 폐지한 것이 기후소송에서 화석연료 기업들을 더 불리하게 만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법정에서 연방법을 방패로 삼아왔는데, 이를 막아줄 방패가 사라져 법적리스크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24일(현지시간) 가디언은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위해성 판단' 폐지가 역설적으로 화석연료 기업들을 기후소송에서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등을 근거로 마련한 것으로,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등 6가지 핵심 온실가스를 국민의 건강과 복지에 해를 끼치는 오염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근거로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주 정부들은 법을 제정해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해왔다.
그런데 미 환경보호청(EPA)은 이 '위해성 판단' 폐지를 이달초 최종 확정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라졌고, 향후 발전소 등 고정오염원에 대한 규제도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방 차원의 기후규제가 대폭 후퇴한 것이다. '위해성 판단' 폐지는 트럼프 정부가 석유기업들에 대한 보상 차원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그동안 석유기업들이 기후 손해배상 소송을 방어하는데 활용해온 '연방법 우선(pre-emption) 방패'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앞으로 제기되는 기후소송을 막을 근거가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최근 수년간 미국의 여러 주와 지방정부는 석유 대기업을 상대로 기후피해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해 왔다. 버몬트·뉴욕주는 2024년 '기후 슈퍼펀드' 법을 통과시켜, 기후재난 비용의 일부를 대기업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에 해당 기업들은 "연방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이 온실가스를 포괄적으로 규제하므로, 주 정부의 규제는 배제된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2011년 연방대법원은 코네티컷주가 제기한 기후소송을 기각하며 "온실가스 규제는 법원이 아니라 EPA의 몫"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유사 소송 상당수가 같은 논리로 기각됐다.
하지만 이번에 EPA가 온실가스 규제의 법적 토대를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버몬트 로스쿨의 환경법 전문가 팻 파렌토는 "연방정부가 더 이상 온실가스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연방법이 주정부의 책임 추궁을 가로막는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잃는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의 사라 라이트 교수도 "행정부가 청정대기법이 온실가스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순간, '연방 차원의 포괄적 규제 체계가 존재한다'는 전제가 무너진다"며 "주법을 배제할 근거가 약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도 소송이 증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력업계 단체 에디슨전기협회는 이미 지난해 "위해성 판단 폐지가 소송 증가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석유협회(API)는 차량 부문 규제 폐지에는 찬성했지만, 발전소 등 고정오염원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선 업계가 보다 광범위한 '면책 방패'를 입법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일부 공화당 의원과 주정부는 기후소송으로부터 화석연료 기업을 보호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총기산업이 2005년 연방 차원의 광범위한 면책을 확보한 전례와 유사한 시나리오다.
EPA는 "청정대기법의 주정부 규제 배제 효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최종 판단은 법원 몫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미 대법원은 콜로라도주 볼더에서 제기한 기후소송을 중단해달라는 석유기업들의 청원을 심리하고 있다. 이 심리에서 대법원이 기업 손을 들어주면 다른 기후책임 소송과 '기후 슈퍼펀드'법까지 무력화될 수 있다. 동시에 위해성 판단 폐지를 지지하면서도 '연방법 우선' 논리를 유지한다는 법리적 모순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방정부가 기후규제에서 후퇴하더라도,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새로운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기후소송 연구자는 "연방의 보호막이 약해질수록, 지역 법원과 주정부는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며 "연방이 물러난다고 해서 기후피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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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나윤 기자 jamini2010@newstree.kr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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